

돌아선 자의 초상: 아비샤이 마갈릿의 『배신』을 읽고
1. 등(背)의 의미: 무방비한 신뢰가 머무는 곳
여러분, **‘배신(背信)’**이라는 글자를 가만히 들여다보십시오. 거기에는 **‘등(背)’**이 있고 **‘믿음(信)’**이 있습니다. 사람은 앞모습에서는 사랑을 속삭이지만, 정작 진실은 등 뒤에 숨겨져 있는 법이지요. 우리가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나의 ‘등 뒤’를 맡긴다는 뜻이 아닙니까? 아비샤이 마갈릿의 책 『배신』은 바로 그 무방비한 등의 아픔을 철학의 언어로 수술해 낸 역작입니다.
2. 장맛과 소스: ‘두터운 관계’에서만 싹트는 비극
마갈릿은 인간관계를 **‘투터운 관계(Thick Relations)’**와 **‘얇은 관계(Thin Relations)’**로 구분합니다. 이것은 마치 우리네 어머니들이 버무리는 ‘장맛’과 같습니다. 얇은 관계는 마트에서 파는 규격화된 소스처럼 감정이 많이 개입되지 않은 쉽고 합리적입니다.
계약서 한 장으로 맺어지는 비즈니스는 ‘얇은 관계’ 관계라고 할 수 있지요. 거기엔 약속의 위반은 있을지언정 배신은 없습니다. 반면, 두터운 깊은 관계는 메주를 띄우고 햇볕 아래서 수천 일을 삭혀낸 간장처럼, 공유된 기억과 끈적끈적한 정(情)이 뒤섞인 세계입니다. 배신이란 오직 이 울타리 안에서만 발생하는 비극입니다.
3. 짓밟힌 이야기: 법적 위반을 넘어선 정체성의 붕괴
낯선 타인이 내 지갑을 훔치는 것은 ‘범죄’이지만, 내 등을 밀어주는 줄 알았던 친구가 나를 벼랑 끝으로 떠미는 것은 ‘배신’입니다.
왜 그럴까요? 배신은 단순히 약속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, 우리가 함께 써 내려온 ‘삶의 이야기’를 통째로 찢어버리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. 반역, 배교, 간통 등—이 세 가지 전형은 모두 우리의 ‘정체성’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. 그것은 내가 누구인지를 증명해주던 뿌리를 스스로 잘라내는 고통을 수반합니다.
4. 생명의 배신: 몸이 나를 공격할 때의 고독
이 대목에서 우리네 삶의 ‘건강’을 생각합니다. 세포 하나가 변질되어 온몸을 위협하는 암세포가 되는 것, 그것 역시 생물학적 의미의 배신이 아닐까요?
믿었던 내 몸이 나를 공격할 때, 우리는 가장 깊은 고독을 느낍니다. 하지만 마갈릿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. 그는 배신의 상처 위로 **‘기억’**과 **‘용서’**라는 연고를 바릅니다. 진정한 용서란 망각이 아닙니다. 그것은 컴퓨터의 ‘Delete’ 키를 누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입니다.
5. 디지로그적 지혜: 오염된 과거를 다시 짜는 ‘용서’
마갈릿이 말하는 용서는 오염된 과거의 기억을 정교하게 다시 짜는(Re-weaving) 작업입니다. 배신으로 인해 얼룩진 추억의 무늬를 버리지 않고, 그 상처의 결까지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‘디지로그(Digilog)’적 지혜가 필요한 것이지요.
인문학의 눈으로 보는 배신은 인간이 신(神)이 아니기에 짊어져야 할 숙명적인 ‘틈새’입니다. 마갈릿의 『배신』은 그 틈새를 메우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필사적으로 서로의 등을 지켜봐야 하는지를 가르쳐줍니다.
지금 곁에 있는 이의 등을 보십시오. 우리 삶은 누군가에게 등을 내어주고, 또 누군가의 등에 기대어 서 있는 릴레이입니다. 배신이 아픈 이유는 우리가 여전히 ‘인간적인, 너무나 인간적인’ 존재이기 때문입니다. 상처 입은 기억조차 내 삶의 흔적으로 안고 가는 것, 그것이 배신의 시대를 건너가는 가장 아름다운 복수아닌 복수가 아닐까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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